留学生インタビュー

내가 일본에서 받은 교육

저는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까지 카톨릭계 학교에서 배웠으며 같은 카톨릭계의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59년 4월 22일에 일본에서 물리학을 배우기 위해서 필리핀을 떠났습니다. 당시 아테네오에서 배우고 있던 대부분의 학생이 그랬듯이 저도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스콜라학의 철학자·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인과관계의 확실성의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양자역학의 불확장성 원리와 아퀴나스가 말한 작용인 원리의 관련성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철학이나 물리학도 분명 흥미있는 연구테마였지만 저는 차츰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이해하거나 일본어를 공부하거나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이나 장래 희망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의 연구가 일본을 안다고 하는 또 하나의 교육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관한 지식을 좀 더 깊게 하고 싶었으며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가능한 많은 일본인과 만났습니다.

학생으로서 일본에서 지낸 5년간, 저에게 3가지가 크게 인상에 남았습니다. 우선, 일본인은 매우 친절합니다. 학급 동료나 선생님께서는 틈을 내어 저의 일본어와 수학 공부를 도와 주셨습니다. 그들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졸업까지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정부 고관과 민간기업 간부의 사모님께서 유학생, 특히 동남아시아의 학생들을 위해서 댄스 파티나 피크닉을 개최하여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기억은 지금도 마음속 깊게 남아 있습니다.

2번째는, 일본어는 어려운 언어라는 것입니다. 도쿄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난 무더운 여름날, 대학 행사로 가마쿠라로 짧은 여행을 갔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이스크림을 팔고 계신 아주머니께로부터 “아이스크림 어떠세요?”라고 말을 건네 받은 저는, 동문서답식으로 “아줌마, 어떻습니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일본에 온지 2년째 되던 때에도 일본어에 관해서 좌절을 느꼈던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도쿄외국어대학에서 1년간 일본어를 배운 후, 도쿄교육대학(현 쓰쿠바대학)의 물리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제가 일본어를 할 때마다 클래스메이트가 히쭉히쭉 웃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일본어를 배운 선생님은 대부분 여성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성 같은 표현을 하게 되어 남학생들에게는 저의 일본어가 매우 정중했던 것입니다. 학생으로서 마지막 해, 체육 필수단위를 따기 위해서 도후쿠지방의 자오에서 열린 스키 합숙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저녁식사 때, 놀랍게도 스키의 인스트럭터가 “도밍고씨, 현지 사람들에게 표준어를 가르쳐 주면 어때요?”라고 모두들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일본어가 드디어 “표준어”로 인정받았다고 생각되자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일본어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37년간 아내 가즈코가 저의 전속 일본어 교사로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인상은, 일본인은 매우 근면하고, 매우 결속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국립대학에서 배운 저와 동세대의 일본인 대부분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라고 하면 수험공부 이외에 그다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겨울의 추운 시기에, 화로 이외에 난방 시설이 없는 광학연구실에서 클래스메이트들과 함께 3일 밤낮을 실험에 전념했던 일이 있었는데 육체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클래스메이트들은 어느 정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코 실험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은 집단을 이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의 클래스메이트도 그랬습니다. 여행이나 스키 합숙을 갈 때에도 대부분 모두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고마웠던 것은 모두가 저를 그룹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인과 일단 친구가 되면 그 우정은 일생 이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일본을 방문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이전 클래스메이트였던 분들과 그 외 일본인 친구를 만나 인간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오늘날의 글로벌사회에 있어 젊은 시절에 소중히 쌓아 온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웹사이트라는 것이 전세계에서 현실로 되기 이전부터, 일본인은 이미 “사전 교섭” (정식적 교섭 전에 상담하는 것)과 “인맥” (인간간의 연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고래의 “인맥”이라는 습관을 강화하기 위해서 전 일본유학생과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웹사이트를 구축하려는 일본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참가할 수 있어서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칭찬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 동아시아 제국이 ASEAN 제국, 중국, 일본, 한국을 초기 멤버로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려 하는 지금, 보다 많은 일본인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ASEAN 제국과 중국, 한국에 유학하게 된다면 그 보다 유익한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할 때 비로서 진정한 상호이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인재육성을 위한 오부치기금의 일부를 일본인 학생이 ASEAN 제국, 중국, 한국에 유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면 어떨지요? 그렇게 된다면, 아시아와 그 외의 국가들로부터 보다 많은 유학생을 일본에 초대하게 됨으로써 현재 프로그램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재일: 2001년 4월 13일